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신원삼
~化 된 인간들
2010.05.11

인터뷰 날짜 : 2009.11.01
인터뷰어 : 나비
글 작성자 : 나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미술이 하고 싶었어요. 미술을 한다고 했는데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는 거예요, 일단 공부하라고. 몇 번이나 말씀 드렸는데 ‘안 된다, 안 된다’하셔서 방학 때 몰래 미술학원에 등록해 버렸어요. 학원비는 나중에 드리겠다고 하고요. 제가 평소 오는 것 보다 늦어지니까 어머니가 요새 뭐하냐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사실은 지금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몰래 할 정도면 정말 좋아하는거라고 생각하셨는지 그럼 다녀보라고 하시더라고요.”

化7 162.2 x 81.0cm mixedmedia 2008

조금씩 부모님 마음을 움직였던 신원삼은 그렇게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한 걸음, 한 걸음 내딪으면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化 되다’시리즈로 대표되는 그의 작업은 현대사회, 현대인들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로써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은 파란색으로 표현된 인간군상들이다. 초점 없는 눈동자, 무표정한 표정, 여기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신체까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모두 획일화된 인간들이다.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처럼 느껴지지가 않는 밋밋한 존재들. 어딘지 모르게 SF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고 그래서 조금은 꺼림칙하다. 이런 모습이 바로 인간이란 말인가.

현대사회가 산업화되면서 직업도 세분화 되었고 선택의 다양함은 배가 되었다. 끊임없이 발전한 기술은 삶의 질을 개선시켜 놓았지만 과연 인간의 본성도 세상의 속도에 맞게 진화했을까?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것을 상실한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신원삼의 작품에서 인간이란 단순히 자신의 개성, 성격을 지닌 특별한 실존적 존재가 아닌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산물처럼 보여진다. 사회가 만들어가는 흐름 속에서 그저 열심히 유행을 뒤쫓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무기력해 보여서 였을까. 그가 표현하는 인간은 너무나 이질적이다. 사물이나 혹은 광고와 같은 현란한 이미지들에 둘러싸인 채 비개성화된 인간들. 그렇게 사물화, 물질화 되어 가고 있는 현대인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해 차가운 질문을 던진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 자연 속에서 인간만이 지니고 있던 본질은 어떻게 된 것일까?

그러나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작품에서는 그의 상징처럼 된 듯한 파란색 인간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스케일부터가 다르다. 1,150x130cm의 대형 캔버스 위에는 두터운 질감의 아크릴만이 거칠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다음 작업을 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러 간 장소가 강남역이었어요. 그곳은 유동인구가 많아서 복잡하면서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기도 하잖아요. 그 화려한 이미지들이 서로 보이려고 하니까 제게는 그 이미지들이 지저분하게 겹쳐 보이더라고요. 서로 얘기를 하려고 하다 보니 조화롭지 못한 지저분한 모습으로 제 눈에 펼쳐진 거예요. 이러한 풍경을 작품에서 표현 할 때 그 동안의 파란색 인간을 없애고 눈 앞에 보이는 지저분한 이미지만을 표현해보면 어떨까 해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무언가 (새로운 작업을 위해) 작정하고 갔던 강남역에서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한 새 작업은 마치 추상화를 보고 있는 듯 하다. 그 파편화 된 이미지에서 본연의 형상을 찾아 보기란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물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 대한 내용은 변한 것이 없었다. 다만 표현방법이 좀 더 과감해졌을 뿐이다. 블랙을 기본 전제로 이 위에 원색이 입혀져 있었고 그래서 그 호들갑스러운 이미지들이 마치 캔버스에 엉겨 붙어 있는 듯 했다. 중심이 되는 검정색은 사물과 인간을 이어주는 사슬처럼 이어지고 있었는데 신원삼은 살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쇼윈도, 광고, 상표들과 인간을 떼어 놓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수히 연결된 사슬처럼 하나의 전체로서 일관된 집합적인 모습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그는 현란한 광고와 다양한 상품들 사이에서 점차 사물화 되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원색적인 색감을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전체적인 이미지는 작업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현대인들의 어두운 면을 들춰내는)와는 반대로 축제의 풍경처럼 화려하게 포장 되어 있었다.

化15 116.9 x 91.0cm mixedmedia 2008

“작업을 하고 전시장에 그림을 걸고 나면 너무 많은 생각들이 왔다 갔다 해요. 부족한 부분도 보이고, 아쉬운 부분도 보이고,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죠. 사람들한테는 어떻게 보여질까, 어떻게 느껴질까, 그게 제일 두려운 거 같아요. 물론 작업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설레기도 하지만요.”

신원삼은 준비 없는 상태에서 전시를 하면 깊은 작업이 안 나올 것 같다며 좀 더 느리게 살더라도 시간을 많이 갖고 싶다고 했다. 평면에서의 탈출을 목표로 한다는 새로운 작업이 확실한 방향을 잡을 때까지 또 얼마가 걸릴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고뇌의 시간들이 다음 작업에서 더 많이 느껴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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